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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하루하루/오늘의 끄적

내가 가장 즐거운 순간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피아노 바이엘 레슨비가 2만5천원이였다. 언니와 나 둘이 배우는 조건으로 인당 2만원에 합의가 됐는데^^;; 선생님이 대놓고 내게 싫은 티를 냈다.(4학년 언니에겐 안그랬다.) 어리다고 모를 줄 아셨는지... 베토벤 방에 있는 좋은 피아노는 못치게 했다. 같은 바이엘이라도 2만5천원 내는 아이는 칠 수 있었는데 내가 칠 순서에 베토벤 방이 비었으면 순서를 바꾸곤 했는데...... 내가 똥귀가 된걸 애써 변명하고 핑계 대자면 그랬다. 슈만 방과 쇼팽 방의 피아노는 똥귀인 내 귀에도 아니올시다였지만 80년대는 그랬다.벌써 30년도 더 지났지만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름의 서러운 기억이다.

그땐 돈 깍은 엄마도 은근 차별하는 선생님도 집에 피아노가 없는 형편도 그래서 학원서 더 치고 싶어도 칼 같이 시간 됐다며 못치게 하던 선생님도 다 야속하고 서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피아노가 요즘은 나를 참 많이 위로 해준다.

서론이 참 길었다.ㅋㅋ
결혼전에 했던 성당 반주를 좀 쉬다가 2호가 태어나기 전부터 다시 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번 성당 미사 반주를 하는데 연습도 못하고 띵똥땡해도 시골 성당 어르신들은 꼭 고맙다 하며 인사를 건네주신다. 내가 나 좋자고 하는건데 늘 민망한 인사를 받는다.

그런데 요근래 성가책을 큰 걸로 새로 샀는데도 눈이 침침해서 반주가 점점 힘들어 진다. 20여년 전에 고도 근시였던 난 라식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서 잘살고 있다. 그래서 근시 느낌으로 침침한 것이 아니고 노안이 오려는 건지 ㅠㅠ 악보만 보면 침침하다ㅠㅠㅠㅠ

게다가 자식이 셋인 나의 오르간 반주는 우아하게 뭔가 멋지게 하는 그런 반주가 아니다.ㅠㅠ 눈은 악보와 2호 3호 신부님 신자들을 다각도로 스캔해야 하고 입은 작게 2호, 3호를 간간히 컨트롤 할 때 써야하고 왼쪽발은 의자에서 흔들 하는 2호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게 막아야 한다. ㅋㅋㅋ

이렇게 늘 2호가 옆에서 닌텐도 스위치를 한다. 내 옆에 없으면 난리가 난다. 엄마 껌딱지라... 또 저 필요악 게임기가 없어도 난리가 난다. 자기가 오르간 치겠다고 막무가내 떼쟁이가 되기 때문에 엄마와 게임기는 풀옵션으로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즐거운 순간은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필요한 사람이게 하는 순간.

오늘은 눈이 침침해서 눈썹을 한 열개는 뽑은 것 같다. 억지로 뽑은 건 아니고 빠질 때가 된 것들이 손으로 당기니 빠졌다. 그럼 순간적으로 시원한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은 미사 중에 자다깬 3호가 난리 치지 않아줘서 고마웠고 2호가 쉬가 마렵다고 하지도 않고 게임하다 말고 졸리다고 울지도 않아 역시 고마웠다.

그리고 이사 오기 전 성당에서 알고 지내던 분이 우리 동네에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왔다가 미사에 참석하며 반가워 해줘서 또 즐거웠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로 늘 격려 받고 덕담도 들을 수 있어서 난 참 즐겁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건 나를 서럽게 레슨해 줬던 그 선생님 덕이다. 달콤하게 나를 대했다면 오기가 없어 대충 한두달 배우다 말았을텐데....지나고 나면 다~~ 이유가 있는 인생이였구나 싶은 그런 밤이다.